AI 기술 발전과 대량생산 힘입어 가격 장벽 허물어
"쓸 곳이 마땅찮다"… B2B 시장 중심 성장, 가정 보급은 아직
스마트폰처럼 플랫폼 선점 경쟁 치열… 진정한 대중화는 유용성·안정성 확보가 관건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 개막인 7일 오전(현지시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글로벌 기자간담회가 열린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루 호텔 엔비디아 전시관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유니트리 G1이 관람객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 세계적인 고물가 기조 속에서도 이례적인 가격 하락세를 보이는 산업이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을 두뇌로 삼은 인간형 로봇, 즉 휴머노이드(Humanoid) 시장이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수억 원을 호가하며 연구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휴머노이드 로봇이 최근 수천만 원 수준까지 가격이 내려오며 상용화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이와 같은 가격 파괴 현상은 인공지능 기술의 눈부신 도약, 핵심 소프트웨어의 개방, 그리고 대량생산을 위한 자동화 공정이 결합된 필연적 귀결이다. 2010년대 초 드론이 대중화되던 시점이나 소수 전문가의 영역이던 스마트폰이 만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과정과 흡사한 변화의 물결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로봇 생산이 가전제품 공정과 다를 바 없어졌다"고 언급하며, 제조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역설했다.
가격은 내렸지만 갈 길은 멀다… 현실과 기대의 간극
그러나 가격 하락이 곧 시장의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과 유사한 외형과 동작을 구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유용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초기 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스타트업이 속출하는 등 '값은 싸졌지만 아직 쓸 곳이 없다'는 이중적인 현실이 산업 성장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산업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가격 인하의 배경은 단순히 대량 생산 효과를 넘어선다. 최근 중국의 AI 로봇 기업 유니트리(Unitree)는 GPT 기반의 대화 기능을 갖춘 휴머노이드 'G1'을 1만 6천 달러(약 2,200만 원)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선보였다. 이는 경쟁 제품 대비 최대 40%가량 저렴한 수준으로, 일부 핵심 부품을 자체 설계하고 공개된 AI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적극 활용해 개발 비용을 극적으로 낮춘 덕분이다.
현대차·보스턴다이나믹스, 글로벌기업과 미래 HR 역할 논의 (서울=연합뉴스) 현대자동차와 보스턴다이내믹스는 UPS, 갭, 큐리그 닥터페퍼 등 글로벌기업 최고인사책임자 8명을 초청해 로봇·인공지능(AI) 시대의 인사관리(HR)에 대해 논의했다고 13일 밝혔다. 사진은 보스턴다이나믹스가 제작한 이족보행 로봇 아틀라스. 2025.7.13 (사진= 현대자동차·기아 제공)
미국 테슬라가 공개한 '옵티머스' 2세대 역시 자체 설계한 AI 알고리즘과 반도체 칩을 통해 원가 절감을 꾀하고 있다. 샤오미의 '사이버원'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잇따라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구체적인 가격과 출시 일정은 베일에 싸여 있다. 이들 모두 하드웨어 제조 기술력과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원가 구조를 혁신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걷고, 듣고, 말하는 건 기본"… 기술의 현주소와 과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두 발로 걷고 균형을 잡는 것조차 큰 기술적 성취로 여겨졌지만, 이제 휴머노이드는 음성을 인식해 대화하고 정밀한 작업을 수행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2세대는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옮기는 섬세한 제어 능력을 시연했으며, 바닥에서 런지 자세를 취하거나 테이블 위 물건을 정리하는 등 인간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모방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연의 대부분은 예측 가능한 통제된 환경에서 이루어졌다는 한계가 있다. 복잡하고 돌발 변수가 많은 실제 가정이나 사무실, 도로 등에서 안정적인 자율성과 내구성을 확보하는 것은 여전히 기술적 숙제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시각과 언어를 함께 이해하는 '멀티모달' 기반 로봇이 등장하며 자율성이 한층 높아졌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사용성'에 있다. 가격이 저렴해졌다고 해서 당장 가정용 로봇 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청소, 설거지, 요리 등 일상 가사는 이미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등 전문화된 기기들이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수천만 원짜리 휴머노이드가 이를 대체하기에는 비용 효율성이 떨어진다. 짧은 배터리 지속 시간, 충전의 번거로움, 내구성 및 유지보수 문제도 대중화의 걸림돌이다.
이 때문에 현재 휴머노이드의 주된 수요는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 집중되고 있다. 물류 창고의 상품 분류, 공장 자동화 라인의 부품 조립, 호텔 안내, 건물 보안 등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업무에서 인간을 대신하며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아마존과 월마트는 물류 센터에 휴머노이드를 시범 도입했으며,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디짓(Digit)'은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병원과 호텔을 중심으로 안내 및 서빙 로봇이 활발히 도입되는 추세다.
'반갑습니다, 휴먼'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4회 스마트테크코리아에서 한 업체 부스에서 휴머노이드가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휴머노이드, 스마트폰처럼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휴머노이드의 급격한 가격 하락이 산업 생태계에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이 산업에서 저가 경쟁이 과열될 경우, '싸게 팔지만 남는 게 없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가격 경쟁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일부 스타트업이 문을 닫거나 대기업에 흡수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업무를 로봇이 대체하는 긍정적 측면 이면에는, 물류·제조 현장의 단순직 일자리가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는 사회적 우려 또한 공존한다.
그렇다면 휴머노이드는 과연 스마트폰처럼 대중화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향후 5~10년 안에 실용성과 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춘 '보급형 휴머노이드'가 등장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관건은 하드웨어가 아닌 '플랫폼'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달렸다. 테슬라는 옵티머스를 단순한 로봇이 아닌, 다양한 앱을 구동하는 로봇 플랫폼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샤오미, 화웨이 등도 자체 AI 서비스를 탑재한 로봇 생태계 구축을 준비 중이다.
AI가 로봇의 '두뇌'가 되고, 반도체가 '근육'이 되며, 오픈소스가 '교재' 역할을 하는 시대. 휴머노이드는 더 이상 공상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가격 하락은 분명 대중화를 향한 중요한 신호다. 하지만 진정한 대중화는 단순히 저렴한 가격만으로 이룰 수 없다. 실질적인 유용성과 안정성, 편리한 유지관리 체계, 그리고 로봇과 공존할 준비가 된 사회적 수용성이 함께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산업의 확산은 B2B 영역에서 시작해, 의료·돌봄·교육처럼 인간의 삶의 질과 직결된 분야로 점차 확장될 것이다. 가격 혁명이란 기회의 문이 열린 지금,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기술의 진정한 시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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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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