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눈 아래 흉터"…패망 직전까지 이어진 일제의 집요한 감시
사회주의자라는 '주홍글씨'…독립운동가 790명 중 169명만 인정
변절자까지 사찰…'블랙리스트'로 이어진 국가 폭력의 어두운 유산
조선인 요시찰인 약명부(왼쪽)와 고(故) 신승혁 선생 관련 기록 (사진=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전까지 일제가 작성한 '조선인 요시찰인 약명부'가 공개되며, 이념의 굴레에 갇혀 잊힌 독립운동가들의 실상이 드러났다. 식민 통치에 저항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 790명을 대상으로 작성된 이 명단에는,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이가 169명에 불과해 나머지 621명의 행적에 대한 재조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른쪽 눈 아래 흉터"…패망 직전까지 이어진 집요한 감시
"키 5척 3촌. 짧은 머리. 오른쪽 눈 아래에서 윗입술까지 2촌 길이의 상흔."
1945년 3~4월께 작성된 약명부에 기록된 독립운동가 이규창(1913~2005) 선생의 인상착의다.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우당 이회영의 아들인 그는 친일파를 처단하고 10년간 옥살이를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권시용 선임연구원은 "형무소 수감자까지 얼굴 흉터 등 신체적 특징을 상세히 기록한 것은 일제가 패망 직전까지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사회주의자라는 '주홍글씨'…790명 중 169명만 인정
일제가 마지막까지 위협으로 간주했던 790명. 그러나 이들 중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이는 21%에 불과하다. 이는 명단에 오른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광복 후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들의 항일 투쟁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실제로 명단에 오른 '신승혁'의 이름 옆에는 '4월 1일 사망'이라는 흐릿한 글씨가 남아있다. '조선공산당 재건에 광분 중 검거하여 취조 중'이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행적을 알 수 없어 여전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다.
민족문제연구소 권시용 선임연구원 (촬영 최원정)
권 연구원은 "광복 직전까지 국내에서 일제와 치열하게 싸운 건 주로 사회주의자들이었지만, 해방 이후 행적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행적으로 독립운동의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절자까지 감시…독재정권 '블랙리스트'로 이어진 어두운 유산
약명부에는 뜻밖에도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했거나 밀정 노릇을 한 친일파의 이름도 포함됐다. 한때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나 변절한 이들마저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것이다.
권 연구원은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을 관리하려는 욕망은 일제의 약명부에서 시작해 독재 정권의 민간인 사찰, 민주화 이후의 블랙리스트로 끈질기게 이어졌다"며 "이 어두운 유산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일제 잔재 청산'"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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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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