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18년 백제 위례성부터 1394년 조선 한양 천도, 1946년 '서울특별시' 공식 명칭까지…단일 사건 아닌 다층적 역사의 산물
▲1940년대 중반 서울 항공사진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은 언제 만들어졌나?" 이 단순한 질문에 역사학자들은 쉽게 하나의 연도를 답하지 못한다. BC 18년 백제 위례성부터 1394년 조선 한양 천도, 1946년 '서울특별시' 공식 명칭까지…단일 사건이 아닌 다층적 역사의 산물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탄생'은 어느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시대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복합적인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곧 한반도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여정과 같다.
서울의 기원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시점은 최소 네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국가의 수도로서 첫발을 내디딘 기원전 18년, 백제가 한강 유역에 위례성을 세운 때다. 둘째는 오늘날 서울의 직접적인 기틀을 마련한 1394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새 왕조의 도읍으로 선포한 해다. 셋째는 근대적 행정 체계 아래 '서울특별시'라는 공식 명칭을 얻은 1946년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이라는 순우리말 이름이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서 유래해 오늘에 이른 언어학적 기원이다.
결국 서울은 어느 한순간에 창조된 도시가 아닌, 수천 년에 걸친 정치적 결단과 도시 계획,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며 형성된 역사적 산물인 셈이다.
고대의 초석, 한강에 터를 잡다 (BC 18 – AD 918)
서울 지역이 역사에 처음으로 국가의 중심지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18년, 온조왕이 한강 유역에 백제를 건국하면서부터다. 『삼국사기』는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했다고 기록했다. 훗날 한성(漢城)으로도 불린 이곳은 475년 고구려에 함락되기까지 493년간 백제의 심장부 역할을 했다.
오늘날 서울 송파구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일대가 당시 위례성의 핵심 지역으로 추정된다. 특히 풍납토성에서 왕궁 터와 중국제 도자기 등이 대거 발굴되면서, 백제 한성 시기가 이미 체계적인 도시 계획을 갖춘 성숙한 고대국가였음이 입증됐다.
한강 유역은 비옥한 평야와 서해로 통하는 수로를 갖춰 삼국시대 내내 가장 치열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을 함락시키자 백제는 웅진으로 수도를 옮겼고, 이후 한강 유역은 고구려의 차지가 됐다. 그러나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이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삼국 통일의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했다. 신라는 한강 유역의 인적·물적 자원과 당항성을 통한 대중국 교역로를 확보해 삼국 경쟁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통일신라 시대에 서울 지역은 수도의 지위는 잃었지만, 757년(경덕왕 16년) '한양군(漢陽郡)'이라는 이름으로 지방 행정 및 군사의 중심지 역할을 이어갔다. 이처럼 천 년 가까이 축적된 중심지로서의 역사적 무게감은 훗날 조선의 건국자들이 한양을 새 수도로 선택하는 중요한 배경이 됐다.
고려의 남쪽 수도, 천도의 꿈을 품다 (918–1392)
고려시대 현재의 서울 지역은 초기에는 양주(楊州)로 불리다 1067년(문종 21) '남경(南京)'으로 승격되며 위상이 급부상했다. 당시 수도였던 개경의 지덕이 쇠했다는 풍수사상과 함께, 한강을 통한 물류의 편리함이 남경 설치의 주된 이유였다. 남경에는 궁궐이 들어서는 등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고려 후기, 몽골 침략과 홍건적, 왜구의 침입으로 수도 개경이 위협받자 남경은 새로운 수도 후보지로 계속 거론됐다. 특히 1382년 이후로는 한양만이 유일한 천도 후보지로 부상했다. 공민왕, 우왕, 공양왕 등 여러 왕이 실제로 한양 천도를 시도했으나, 구 귀족 세력의 반발과 정치적 불안으로 번번이 좌절됐다.
이러한 반복된 시도는 비록 실패했지만, '한양으로 수도를 옮겨 국운을 쇄신해야 한다'는 정치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1308년 한양부(漢陽府)로 개칭된 이곳은 이미 고려 왕조가 100년 이상 '남쪽 수도'로 공인하고 궁궐까지 지어놓은, 역사적 정통성이 축적된 공간이었다.
1394년, 조선의 심장으로 재탄생하다 (1392–1405)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게 새로운 수도 건설은 왕조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였다. 고려의 수도 개경은 구시대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새 수도 후보지로는 계룡산, 무악(현재 신촌 일대), 한양이 치열하게 경합했다. 계룡산은 국토 남쪽에 치우쳤다는 점, 무악은 궁궐 터가 협소하다는 단점이 지적됐다. 최종적으로 한양이 선택된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지정학적 이점, 한강을 통한 편리한 조운, 북악산을 주산으로 한 풍수지리적 명당의 조건, 그리고 고려 시대 남경으로서의 역사적 정통성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마침내 1394년(태조 3년) 음력 10월 25일, 조선은 한양으로의 천도를 공식 단행했다. 이듬해인 1395년에는 한양부를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하며 조선의 유일한 수도임을 공포했다. 이후 '왕자의 난'으로 정종이 잠시 개경으로 환도했으나(1399년), 3대 국왕 태종이 1405년 다시 한성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한성은 500년 넘게 조선 왕조의 변치 않는 심장부로 자리 잡게 됐다.
치밀한 계획도시, 한성부의 설계
한성은 자연 발생적 도시가 아닌, 성리학적 통치 이념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설계된 계획도시였다. 고대 중국의 고전 『주례』를 따라 '좌묘우사(左廟右社, 궁궐의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단)'와 '전조후시(前朝後市, 궁궐 앞에 관청, 뒤에 시장)' 원칙이 적용됐다.
이에 따라 경복궁 동쪽에는 종묘, 서쪽에는 사직단이 건설됐고, 정문인 광화문 앞에는 육조거리가 조성됐다. 시장은 종로 일대에 시전 형태로 들어섰다. 또한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잇는 약 18.6km의 한양도성을 축조해 수도의 방어 체계를 갖추고 안과 밖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
행정적으로는 정2품 판윤이 다스리는 '한성부'를 설치하고, 도성 안을 5부 52방으로 나누는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처럼 한성의 도시 구조와 행정 체계는 그 자체로 조선 왕조가 지향하는 질서와 이념을 보여주는 거대한 상징물이었다.
근대의 정체성, '서울'의 공식 탄생 (1910–1949)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한성부는 '경성부(京城府)'로 격하되어 경기도 산하의 지방 도시로 전락했다. 이는 한민족의 역사적 중심지를 식민 통치의 거점으로 격하시킨 상징적 조치였다.
오늘날의 '서울'이라는 이름은 신라의 수도 '서라벌(徐羅伐)'에서 유래한 순우리말이다. '서라벌'은 시간이 흐르며 '서울'로 발음이 변했고, 조선 시대 백성들은 수도 한성부를 관습적으로 '서울'이라 불렀다. 당시 '서울'은 고유명사가 아닌 '수도'를 의미하는 보통명사였다.
1945년 해방 직후, 수도의 명칭은 '경성', '한성', '서울'이 혼용되는 혼란기를 겪었다. 이 혼란을 종식시킨 것은 1946년 9월 18일 공포된 미군정법령 제106호였다. 이 법령을 통해 경성부는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됐고, '서울'이라는 이름이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 법적 명칭으로 채택됐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서울의 지위는 '서울특별시'로 최종 확정됐다. 민중의 언어 속에 살아 숨 쉬던 순우리말 '서울'을 공식 명칭으로 채택한 것은 식민 통치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적 주체성을 되찾으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는 근대적 의미에서 '서울'을 창조한 역사적인 순간으로 평가된다.
결론적으로 서울의 탄생은 하나의 시점으로 규정할 수 없는, 연속적인 역사 과정 그 자체다. 백제의 수도로 잉태되어 고려의 남경으로 성장했고, 조선의 한성으로 만개했으며, 마침내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수도가 됐다. 가장 중요한 기점을 꼽는다면 오늘날 도시의 기틀을 마련한 1394년을 들 수 있지만, 그 뿌리는 기원전 백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서울특별시'라는 공식적인 탄생은 1946년에 이루어졌다는 다층적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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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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