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신세계 질서' 구상, 미국 패권에 공식 도전장

이우창 기자

등록 2025-09-02 13:45

SCO·브릭스 통해 '반미 연대' 구축, '역사 재해석'으로 대만 통일 명분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상하이협력기구(SCO, 중국·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 정치·경제·안보 협력체) 정상회의와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 열병식을 발판 삼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일 심층 보도했다.



 

톈진서 시진핑-푸틴과 함께 자리한 모디 인도 총리톈진서 시진핑-푸틴과 함께 자리한 모디 인도 총리 (사진= 톈진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고율 관세와 무역 압박이 전 세계를 뒤흔드는 상황을 역이용, 시 주석이 외교적 연대 구축과 역사 서사 재편이라는 '두 개의 전선'을 통해 미국 중심의 질서에 도전하고 중국 주도의 다자주의 체제를 구축하려는 양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SCO 무대서 '반트럼프 연대' 구축... "다자주의 수호자" 자처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최근 톈진에서 열린 SCO 정상회의를 자신의 글로벌 리더십을 과시하는 무대로 적극 활용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압박에 직면한 국가 정상들 앞에서 "세계가 격동과 변화를 겪고 있으며, 질서 있는 다극적 세계를 옹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자유 무역과 더 정의롭고 합리적인 세계 거버넌스 시스템을 수호하자"고 촉구하며,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맞서는 '다자주의의 수호자'임을 분명히 했다.


FT는 이러한 시 주석의 발언이 단순한 수사를 넘어,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라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며 현재 미국 주도의 시스템에 대한 명백한 도전장을 내민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회의 결과물로 채택된 '미래 10년(2026∼2035년) 발전계획' 선언문에는 "지정학적 대립 격화로 세계 안정이 위협받고, 특히 국제무역과 금융시장이 심각한 충격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 역시 "소수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는 독점은 계속될 수 없다"며 미국을 향한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SCO를 넘어 브릭스(BRICS)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FT는 다음 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주도로 열릴 브릭스 화상 정상회의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이 주요 의제로 논의될 것이라며, 비서방권 국가들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음을 주목했다.


물론 이에 대한 미국의 시선은 싸늘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SCO 정상회의를 "보여주기 행사"라고 평가절하하며, 중국과 인도를 "러시아의 전쟁 기계에 연료를 공급하는 악당"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승절 80주년 앞둔 톈안먼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준비가 이뤄지고 있는 29일 오후 베이징 톈안먼의 모습. (사진= 베이징 연합뉴스)

◆ '역사 재해석' 통한 대만 통일 명분 쌓기

'역사 재해석'은 중국 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을 공고히 하고, 대만 통일과 같은 핵심 지정학적 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정교한 포석이다. 


FT는 오는 3일 베이징에서 열릴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이 단순한 군사력 과시를 넘어,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자 전후 국제질서의 핵심 수호자라는 새로운 서사를 전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최근 몇 년간 역사 교과서와 공식 역사관을 꾸준히 수정해왔다. 항일전쟁의 시작점을 기존의 루거우차오 사건(1937년)에서 만주사변(1931년)으로 앞당겨 '8년 항전'을 '14년 항전'으로 공식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합작'을 통해 항일전쟁을 치렀다는 기존의 인식을 넘어, 중국 공산당이 항전의 '중류지주(中流砥柱·역경을 버티는 굳건한 기둥)'였다고 강조하며 그 역할을 절대화하고 있다.




베이징의 중국미술관에 전시된 항일전쟁 관련 작품베이징의 중국미술관에 전시된 항일전쟁 관련 작품 (사진= EPA 연합뉴스)


이러한 역사 재구성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만 문제와 직결된다고 FT는 분석했다. 중국은 일본의 패망을 공식화한 1951년 미국 주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전후 대만을 중국에 반환한다고 명시한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다. 


이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일본의 대만 영유권 포기만 규정했을 뿐 귀속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법적 공백을 파고드는 전략이다. 즉, 카이로와 포츠담 선언을 통해 '하나의 중국' 원칙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대만 통일 명분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으려는 정교한 시도인 셈이다.


중국 미디어 프로젝트의 데이비드 반두르스키 이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자국이 다자주의의 창시자 중 하나이며, 이제 그 다자주의를 새롭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을 세계에 알리려 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시 주석은 외교적 세력 규합과 역사적 정통성 확보라는 양 날개를 활용해,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을 넘어 중국 중심의 대안적 세계 질서를 제시하려는 원대한 구상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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