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한국 ODA 성숙하려면 이것이 중요하다

이우창 기자

등록 2025-08-07 07:24


이현정 한국수출입은행 대외협력기금(EDCF) 카이로 소장


이현정 한국수출입은행 대외협력기금(EDCF) 카이로 소장이현정 한국수출입은행 대외협력기금(EDCF) 카이로 소장 (사진= 이현정 제공)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한국 공적개발원조(ODA) 생태계는 위계적 구조 속에 여러 이해당사자가 얽혀 있다. 가장 상위에는 한국 정부의 ODA 정책의 유무상 방향을 설정하는 국무조정실이 있다.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유상원조는 기획재정부가, 무상원조는 외교부가 각각 주관한다. 분야별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보건복지부, 환경부, 행정안전부 등 부처들이 각각 ODA 사업을 관리한다. 각 부처 산하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국제보건의료재단 등과 같은 공공기관이 있다. 또 그 아래에는 이들 기관의 사업을 현장에서 직접 수행하는 기업, 학교, 비정부기구(NGO), 재단, 연구소 등이 있다.



아프리카 앙골라 지도아프리카 앙골라 지도 (사진= 양진규 제작)


한국은 미국, 일본 등 전통적 공여국에 비해 ODA 역사와 경험이 짧다. 특히 아프리카 대상 EDCF 사업은 전체 54개국 중 18개국에서만 단 한 차례 이상 사업 계약이 체결됐다. 이 중 최근 10년 이내 신규 사업이 승인된 곳은 13개국에 불과하다. 그나마 3∼4년에 한 번씩 사업이 계속되는 국가는 10개국 정도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상황은 각각 다르다. 인프라 분야가 교통인지, 상하수도 등 위생 부문인지, 교육 부문인지에 따라 상대국 내 협력 주체가 달라진다. 같은 유형의 사업이라도 행정구역이 달라지면 사업 현장의 환경 차이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 현장 사업자는 보통 새로운 상대와 낯선 환경에 맞닥뜨리고, 시행착오를 피하기 어렵다.


현지에 EDCF 사무소가 있으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반면 사무소가 없는 일부 국가에서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외부 문서를 참고해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실제 현장 경험 없이 사업을 시행하는 경우 부담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균 10개월간, 각 전문가가 몇 주간에 걸쳐 현지 출장을 통해 작성한 타당성보고서(F/S)에 기초해 사업을 심의하고 추진한다. 그러나 승인 이후 사업이 진행되면 타당성보고서에서 누락·간과되거나, 정확하게 조사하지 못한 변수가 생긴다. 또 타당성보고서의 조사 시점과 실제 사업이 진행되는 3∼4년의 변화 등으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현지 사업실시기관이나 행정기관의 계약 미이행, 과도한 과세, 부정부패, 현지 정부의 비협조 등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이렇게 크고 작은 문제가 누적되면 사업 수행기관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사업 기간 지연이나 예산 초과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사업 수행기관은 이를 담당 기관에 보고하고, 담당 기관은 사안의 경중에 따라 이를 한국 정부에 보고한다. 한국에서는 계약서를 기준으로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지 사업 시행처는 계약보다 관행을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현지 관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한국 기업이 오히려 문제의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문제의 원인이 복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책임의 주체를 명확하게 밝히기 어려운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사업 중단이라는 심각한 상황이 예상되더라도 실제로 사업을 중단하는 결정은 쉽지 않다. 이는 양국 정부 간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당자는 극단적인 조치를 피하기 위해, 현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위계 구조 내 다양한 계층별로 관계자가 쉽게 취할 수 있는 입장을 생각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앙골라 루안다 경찰청 치안 강화 사업으로 설치된 도로 CCTV 점검 후 현장 관계자와 기념 촬영(가운데 필자) (사진= 이현정 제공)


문제가 생기면 각 계층의 이해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보이기 쉽다. 정부 부처는 "사업 예산을 어렵게 확보했는데, 사업이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다면 다음 예산 확보가 어렵다"고 말한다. 반면 ODA 공공기관은 "이번 사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다음 사업 기회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업 수행기관 본사 담당자는 "현장 문제는 현장에서 해결하고, 현장에서 수익은 못 내도 최소한 적자는 절대 안 된다"고 지시한다.


현장 실무자는 위계 구조의 최하단에서 모든 부조리를 감내한다. 한국의 ODA 제도나 규정이 현지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 속에서, 결국 계약 종료나 퇴사를 선택하게 된다.


2017년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 경찰청 치안 강화 사업을 위해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을 통해 장기간 지연되고 있던 농업현대화 사업의 앙골라 측 이해관계자도 함께 만나야 했다. 당시 앙골라 농업부 담당자와 면담을 통해 사업 지연에 따른 앙골라 측과 한국 사업수행사 측의 상호 불만이 누적돼 있음을 확인했다.


당시 필자는 지연된 사업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한국 측 현장 근무자의 소극적 대응 때문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대로 사업이 완공되지 못하면 다음 사업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은근한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사진= yes24 캡처)


그로부터 6년 뒤인 2023년 한 지인을 통해 '미지의 아프리카 앙골라 이야기'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이 책은 당시 앙골라 농업현대화 사업의 현장 관리자였던 고진도 부장이 쓴 책이다. 책에는 아프리카, 물, 전기, 도로 없는 오지에서 컨테이너를 임시 숙소 삼아 가족과 수년간 떨어져 생활하며 벌레, 더위, 풍토병, 고독과 외로움을 견뎌내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위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지속해서 질책받으며 ODA 거버넌스의 가장 아래에서 과업을 견뎌낸 기록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2017년 당시 앙골라 출장 시 확인했던 농업사업의 문제는 특정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이해관계자들의 조사·경험·이해 부족 등 복합적 요인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필자는 한국 측 현장 인력의 소극적 대응에만 책임을 돌렸다.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판단했음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DCF 사업의 성패는 여전히 시공사나 컨설턴트 현장 인력이 상대국 담당자와 얼마나 적극적으로 소통하느냐가 중요하다. 문제 발생 시 책임소재를 따지기보다 해결책을 얼마나 진지하게 찾아내려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사업 수행 과정에서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이해관계자 간 조율과 설득에 힘쓴다면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는 갈등이 적지 않다. 이러한 갈등을 포기하지 않고 수시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향후 심각한 문제로 커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사업이 마무리된 후 현지 사업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 정도 과업을 완수하느라 한국의 현장 분들이 고생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드물다. 오히려 현지인이 한국 현장 인력들에 대해 아쉬운 점, 부족한 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어떤 회사가 EDCF 사업을 맡았는가보다 어떤 사람이 현장에 있으며, 어떤 태도와 경험으로 현지 관계자와 신뢰(rapport)를 쌓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곤 한다.


이러한 이유로 현장과 가까운 EDCF 사무소에서는 이력서상의 경력이나 자격증·학력보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현지인과 소통하고,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와 의지를 더 중요하게 평가하게 됐다.



2023년 이집트 카이로 메트로 전동차 사업관련 EDCF 집행 약정 서명식2023년 이집트 카이로 메트로 전동차 사업관련 EDCF 집행 약정 서명식 (사진= 주이집트 한국대사관 제공)


EDCF의 아프리카 현장 경험이 축적되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또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는 위계 구조 내 각 계층이 책임소재를 따지기보다 적극적으로 상호 소통해 해결책을 찾는 문화가 확산하길 바란다. 이러한 사례가 꾸준히 축적될수록 한국의 ODA는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국일일보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이현정 소장


현 한국수출입은행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이집트 카이로 사무소장,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서울대 글로벌 MBA, 세종대 국제개발협력학 석사, EDCF 탄자니아 사무소장(2017), 경협사업1부 팀장(2020), EDCF 아프리카부장(2021). EDCF 가나 사무소장(2022)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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