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덮친 '혈관 속 시한폭탄', 폐색전증

이우창 기자

등록 2025-08-23 07:21

골절·수술 후 장기간 누워있었다면 '숨참' 증상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방치 시 사망률 30%



폐색전증폐색전증 (사진= 자료 이미지)


얼마 전 70대 A씨는 갑작스럽게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극심한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그가 받은 진단명은 '폐색전증'. 불과 한 달 전 입은 다리 골절상으로 침상에 누워 지내는 동안 다리 정맥에 남몰래 생성된 혈전(피떡)이 혈관을 타고 폐로 이동해 생명을 위협하는 폐동맥을 막아버린 것이다. 의료진은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A씨의 사례처럼 폐색전증은 심장병이나 뇌졸중만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치명적인 질환이다. 특히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년층을 중심으로 발병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사회적 경각심이 요구된다. '혈관 속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폐색전증의 모든 것을 심층 분석했다.


다리에서 시작된 혈전, 폐의 숨통을 막다

폐색전증은 혈액이 굳어 만들어진 찌꺼기인 혈전이 혈류를 타고 이동하다가 폐의 혈관을 막아 발생하는 응급 질환이다. 우리 몸의 산소 교환을 담당하는 폐동맥이 막히면, 호흡을 통해 들어온 산소가 신체 각 기관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치명적인 상황에 부닥친다. 이로 인해 환자는 갑작스러운 호흡곤란과 극심한 흉통을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원인이 되는 혈전은 다리 깊은 곳의 정맥(심부정맥)에서 시작된다. 드물게 팔이나 골반 등 다른 부위 정맥에서 생성되기도 하지만, 다리에서 발생한 혈전이 떨어져 나와 심장을 거쳐 폐로 날아가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이처럼 심부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질환을 '심부정맥혈전증'(DVT)이라고 부르며, 폐색전증 환자의 상당수에서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숨이 차다", 무시해선 안 될 위험 신호

폐색전증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안정 시에도 나타나는 호흡곤란이다. 이 증상은 조금만 움직여도 급격히 악화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숨을 깊게 들이쉴 때 칼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흉통이 발생하기도 해 심장마비로 오인되기도 한다. 통증으로 인해 심호흡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잦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황헌규 교수는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질환은 천식, 폐렴, 심부전 등 다양하지만, 특별한 원인 없이 갑자기 숨이 차다면 반드시 폐색전증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면서 "진단이 늦어질수록 혈전이 폐혈관을 더 광범위하게 막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만큼, 증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절대 안 된다"고 경고했다.


고령층, 암 환자 등 고위험군 특히 주의해야

폐색전증은 특정 위험 요인을 가진 사람에게서 발생할 확률이 높다. 대표적인 고위험군으로는 ▲고령자 ▲암 환자 ▲수술이나 골절 등으로 장기간 침상에 누워 있는 환자 ▲과거 정맥혈전 병력이 있거나 가족력이 있는 사람 ▲고령의 임신부 등이 꼽힌다.


특히, A씨처럼 다리 골절이나 큰 수술 후 장시간 움직이지 못하면 다리 근육의 수축·이완 운동이 사라져 혈액의 흐름이 급격히 느려진다. 이렇게 정체된 혈액은 끈적하게 엉겨 붙어 혈전을 만들기 쉬운 최적의 환경이 된다.


유병률은 서구권에서 인구 1천 명당 1명꼴로 보고되며, 국내는 2천 명당 1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며, 노인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국내 발병률 역시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실제 국내 폐색전증 및 심부정맥혈전증 환자 통계를 보면 전체의 70%가 60세 이상 노년층에 집중되어 있다.


진단과 치료, 항응고제로 사망률 크게 낮춰

진단은 주로 컴퓨터단층촬영(CT)을 이용한 폐혈관조영술을 통해 폐동맥 속 혈전을 직접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원인이 되는 다리의 심부정맥혈전증을 찾기 위해 정맥 초음파 검사를 병행하기도 한다.


치료의 핵심은 더 이상의 혈전 생성을 막고 기존 혈전이 녹도록 돕는 '항응고 요법'이다. 과거에는 '와파린'이 주된 치료제로 사용됐으나, 특정 음식(비타민K 함유 음식)이나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이 심하고, 주기적인 혈액검사로 약물 농도를 조절해야 하는 불편함이 컸다.


최근에는 이러한 단점을 개선한 새로운 경구용 항응고제(DOAC, Direct Oral Anti-Coagulant)가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았다. 이 약물은 혈액 응고 과정에 관여하는 특정 단백질을 직접 억제해 와파린보다 효과가 빠르고 안정적이며, 음식 상호작용이 거의 없어 환자의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 국내에서는 리바록사반, 아픽사반, 에독사반, 다비가트란 등의 성분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들 약물은 출혈 위험을 낮춰, 복용 중에도 대부분의 수술이 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스케일링이나 발치 같은 저위험 시술은 약을 중단하지 않고도 가능하며, 출혈 위험이 중간 수준인 수술도 수술 전날과 당일만 약을 끊는 것으로 충분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폐색전증은 치료하지 않을 경우 사망률이 30%에 달하지만, 진단 후 신속하게 항응고 치료를 시작하면 사망률을 2~8%까지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황 교수는 "초고령사회에서는 암이나 골절 같은 질병이 흔하고 복용 약물도 다양해져 누구에게나 폐색전증이 발생할 수 있다"며 "평소와 달리 갑자기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났다면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고, 정확한 원인을 찾아 생명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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